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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잭슨 단독 인터뷰] '즐기는 게임···승리 직감 때 희열'

필 잭슨 감독은 올 시즌 레이커스를 우승으로 이끌면 고(故) 레드 아워백 감독을 제치고 우승반지 10개로 역대 최다 우승 감독으로 등극한다. 하지만 잭슨은 그런 기록에는 연연하지 않고 올 시즌의 여정 자체를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왜 불스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는 지 그의 농구철학 그리고 시즌 목표에 대해 들어봤다. -농구 외 다른 스포츠도 했나. "어린 시절 내가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은 스포츠를 할 때 뿐이었다. 풋볼도 하고 야구도 했다. 투수로 꽤 좋은 활약을 펼쳤고 LA 다저스로부터 드래프트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왜 메이저리그를 포기했나. "스포츠하는 사람들은 모두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보는 게 꿈이다. 하지만 농구에 더 자질이 있다고 판단했다. 메이저리그를 선택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스포츠 진행자로도 활동한 적이 있는 데 당시 경험이 어땠나. "잠깐 했다. 즐거웠지만 경기에 뛰거나 감독하는 것만큼의 매력을 느끼진 못했다." -시즌에 앞서 선수들에게 항상 책을 주기로 유명한 데. 올해는 어떤 책들을 선수들에게 읽게할 것인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시즌 전이 아니라 첫 원정 길에 나설 때 책을 준다. 각 선수들의 성격에 맞는 책을 골라주는 데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서다. 예전에 지도자의 희생정신을 강조한 '코렐리의 만돌린'을 코비에게 선물한 적이 있는데 코비가 그리 감명깊게 읽지는 않았다." -선수들이 책을 정말 읽었는 지 테스트하는가. "멤버들은 다 읽은 다음에 나에게 리포트를 제출해야 한다." -마이클 조던은 책을 한 번도 읽지 않았다고 들었는 데. "그래서 한 번은 도박에 관한 책을 준 적도 있다(조던은 도박을 좋아하기로 유명하다)." -제리 크라우스(당시 시카고 불스 단장)와의 불화로 불스를 떠나게 됐는 데. 사이가 나빠진 결정적인 이유가 뭔가. "시카고 트리뷴의 샘 스미스 기자가 쓴 책 'Jordan Rules'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이 책은 제리를 비롯해 마이클이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낱낱이 다 드러냈다. 제리는 그에 대한 뒷얘기를 내가 다 제공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후 그와 불편한 관계를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1998년 농구계에서 떠나는 바람에 조던도 따라서 은퇴(1999년)했다는 말이 있는데. "당시 두 번 다시 농구 감독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내가 마이클의 은퇴를 불러왔다는 말이 있지만 어차피 인생은 각자가 알아서 살아야 할 문제다. 마이클의 은퇴도 결국은 전적으로 마이클의 결정이었다." -38세였던 조던의 워싱턴 위저즈 컴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 나이에 아주 뛰어난(exceptional) 활약을 펼쳤다." -이후 레이커스 감독직을 맡아 또 3연승을 일궈냈는데. 불스와 레이커스의 차이점이 있다면. "마이클이 (첫 번째로) 컴백한 뒤 멤버들은 다들 알아서 열심히 뛰었다. 연습도 전쟁이었다. 때문에 나로서는 좀 편한 점도 있었다. 불스가 대학생이라면 (샤킬-코비가 이끈) 레이커스는 초등학생들이었다. 이들의 집중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내가 선수들 개개인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할 필요성을 느꼈다." -코비 브라이언트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나. "대단히 똑똑하고 성숙한 데다 매너있는 친구라고 느꼈다. 물론 이후 코비와 어려운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잠시 1년 동안 감독직을 떠난 뒤 그와 다시 만났을 때 관계가 좋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 시즌 결승 때 레이커스가 보스턴을 꺾을 것이라고 예상했는 데. "라마 오덤과 파우 가솔이 골밑에서 밀린 게 패인이었다. 보스턴의 디펜스가 좋았다." -시즌 별로 따질 때 어느 팀이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가장 잘 구사했나.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익히려면 한시즌 반은 족히 걸린다. 1994-95 1995-96 1996-97 불스는 완벽에 가까웠다." -'젠 매스터(Zen Master)'라고 불리는데. "사실 '젠 매스터'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젠'은 매스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수들에게 특히 강조하는 점이 있다면. "NBA 선수라도 농구만 생각하면 삶이 금방 지루해진다. 이들에게 농구와 함께 인생을 가르치려 노력한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NBA 선수들이 한 28살은 돼야 성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직업상 사회경험을 많이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 역시 감독의 역할이라 나는 생각한다." -감독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연습이다. 선수들이 연습을 통해 뭔가를 얻는 모습을 지켜볼 때 성취감을 느낀다. 감독의 역할도 실전보다는 연습에 있다." -책을 여러권 출간했는 데. 현재 준비하고 있는 책이 또 있나. "Sacred Hoops(1995년도 저서)의 속편을 생각하고 있다. 언제 출판될 지는 모르겠다." -올 시즌 목표가 있다면. "물론 우승을 하면 좋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목표'가 아니라 '여정(journey)'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순간보다 경기 중 승리를 직감했을 때 더 큰 희열을 느낀다."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한국에 대해서도 잘 아는가. "한국 음식을 아주 좋아한다. 특히 김치 종류는 다 즐겨 먹는다(웃음)." 원용석 기자

2008-10-28

[필 잭슨 단독 인터뷰-1] 목사가 꿈···코드 전도사 변신

지난 1987년 필 잭슨은 농구계를 완전히 떠날 생각이었다. NBA의 마이너리그격인 CBA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리그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그의 1975년 자서전 'Maverick' 때문에 NBA 구단들은 그를 감독은커녕 코치로도 영입하기를 꺼려했다. 'Maverick'에서 그는 LSD 복용 NBA 뒷얘기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리그에 파장을 몰고왔다. 잭슨도 결국 농구를 접고 변호사가 되기 위해 법대에 진학할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시카고 불스 단장 제리 크라우스가 코치직을 제안한 것. 크라우스는 그를 감독으로 영입하려 했지만 '자서전 사건'으로 인한 파장을 우려해 보조코치로 영입했다. 이후 그는 불스 감독으로 승격됐고 마이클 조던과 함께 6회(1991~1993 1996~1998) 우승을 일궈내며 '불스 신화'를 만들었다. 잭슨에게는 그를 감독으로 만들어준 크라우스가 은인인 셈이다. 그러나 은인은 곧 숙적이 되고 만다. 불스내 그의 영향력이 커진 것을 시기한 크라우스와의 감정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결국 잭슨은 "불스가 82전 전승을 해도 넌 무조건 해고야"라는 수모의 말을 듣고 98년 은퇴를 선언했다. 이는 "잭슨 감독이 떠나면 나도 농구계를 떠나겠다"고 공언한 조던 마저 은퇴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잭슨은 제리 버스 LA 레이커스 구단주의 끈질긴 설득으로 레이커스 사령탑에 오른다. 그리고 번번이 우승을 놓쳤던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와 함께 3회(2000~2002) 연속 우승으로 총 9개의 우승반지를 낀 역대 최고 감독으로 등극했다. 조던 코비 오닐이 모두 잭슨을 만나지 못했다면 우승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농구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필 잭슨. 그를 두고 '젠 매스터' '농구계의 철학가'라고도 부른다. NBA 2008-09시즌 개막을 앞두고 지난 16일 필 잭슨 감독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 1부는 그의 어린 시절 자서전 사건 NBA 선수시절 조던과 코비에 대해서 2부는 크라우스 단장과의 불화 농구철학 레이커스에서의 감독생활 그리고 시즌 목표에 대한 인터뷰로 정리했다. - 다리가 아프다던데 좀 어떤가. "알 수 없이 계속 부어올랐지만 지금은 괜찮아졌다. 올 시즌은 잘 넘길 것이다." -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고 들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두 펜테코스테파 교회 목사였고 두 분 모두 엄격하셨다. 어머니는 내게 성경구절을 항상 외우게 하시는 등 아버지보다 더 엄격하셨다. 어머니는 불같은 분이셨고 경쟁심이 대단했다. 어렸을 때는 농구부 주장도 맡았다. 아버지는 평범한 크리스찬이 아닌 훌륭한 크리스찬이 되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집안 분위기 때문에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진 못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집에 TV도 없었다. 영화보러 간 적도 없었고 락&롤 음악도 듣지 못했다. 담배 술은 말할 것도 없다. 오로지 교회와 학교 뿐이었다. 한 번은 하교한 뒤 집에 아무도 없어 (예수님이 재림해서) 어머니 아버지를 모두 하늘로 데려가고 나만 세상에 남게된 줄 알았다. 그 때 울면서 어머니를 찾기 위해 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던 적도 있다. 결국 어머니가 기독교 방송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서 안심한 일도 있었다(웃음)." -부모처럼 목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물론 있었다. 하지만 남들이 방언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모두 꾸미는 것은 아닐까'하고 자문하기 시작했다. 15살쯤 이 길이 내가 갈 길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교회에서 내가 들었던 것처럼 세상사람들이 그리 나쁘다고 생각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엄격함이 당신을 (별명인) '독불장군(maverick)'으로 만들었나. "그런 것 같다. 어린 시절 집안이 엄격했던 사람들을 보면 그에 순응하거나 그에 반항하거나 둘 중 하나를 결국 택하게 된다." -NBA 선수시절은 어땠나. "돈 때문에 NBA선수가 됐다. 뉴욕 닉스에서 뛰었을 때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마음을 굳혔고 학비를 번다는 생각으로 뛰었다. 하지만 닉스를 따르는 팬들의 열정이 대단하다는 것을 곧 알게됐다. 그 때 스포츠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를 알게됐다." -선수시절에 LSD를 복용한 게 인생관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는 데. "그건 말이 와전된거다. 솔직히 말해 LSD를 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후 영적으로 문제가 있을까봐 끊었다." -크리스찬이면서 불교에 심취한 것으로 유명한 데. "불교의 묵상에 관심이 많다. 특히 타오이즘 그리고 잘 알려진대로 Zen(선:禪)에 매력을 느꼈다. 평화로운 느낌이 나에게 어필했다. 하지만 불경을 성경처럼 잘 알지는 못한다. 워낙 성경에 대한 지식이 가득하기 때문에 다른 종교가 내 머리속으로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내가 크리스찬이면서 불교를 공부해서 이상하게 보는 이들도 있다. 달라이 라마는 크리스찬들에게도 상당히 호의적이다. 반면 크리스찬들은 믿음 자체가 다른 종교를 받아들이기 힘들게 돼 있다. 과거 토마스 머튼처럼 크리스찬들이 타 종교인들과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 -불교 아이디어를 많이 섭렵하면 동료 크리스찬들이 뭐라 그러지는 않았나. "나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자꾸 젠에 대해 얘기하니 그럴만도 하다. 그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하지만 나 역시 내가 하고 있는 것에 확신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자서전) Maverick을 낸 다음에 어려움을 겪었는 데. "LSD를 사용한 것부터 NBA 뒷얘기들을 100% 솔직하게 담아서 문제가 됐다. 그 책을 낸 것에 대해 후회할 때가 더러 있다. NBA도 이 때문에 나를 불신했던 시기가 있었다." -마이클 조던을 지도한 사람으로서 그를 평가한다면. "마이클의 에너지를 보면서 감탄했다. 마이클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친구다. 모든 이들의 기대치를 뛰어넘은 보기 드문 선수였다." -조던이 당신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다고 생각하나. "팀 동료들을 믿기 시작했다. NBA에서 우승은 한 사람 힘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마이클도 깨닫게 됐다." -조던과 코비 브라이언트를 모두 지도해본 감독으로서 누가 더 뛰어난 선수라고 생각하나. "전체적인 농구 실력에서 코비가 마이클보다 처지지 않는다. 하지만 마이클에게 있는 게 있고 코비에게 없는 게 있다. 마이클이 보다 강한 몸과 손을 가졌다. 특히 그의 손은 10억 달러짜리 손이다. 상대 선수에게 파울을 당하면서 슛을 성공시키는 능력은 마이클을 따를 자가 없다. 3점슛을 비롯해 외곽슛 능력은 코비가 뛰어나다. 인사이드 게임은 마이클쪽이 강했다. 결정적으로 마이클은 야투 성공률이 50%였다. 코비는 50%를 넘긴 적이 한 번도 없다." 원용석 기자

2008-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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